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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네 번째 프롤로그 - 한국에 정착한 화성인과 금성인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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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정착한 화성인과 금성인

 

🔭 기록 시작.
중심좌표 0.0 관측소, 2025년 4월 25일, 우주 표준시 19:30.
나는 제로박사, 끝없는 우주의 중심에서 지구의 작은 반도, 한국이라는 지역을 관찰하는 자다. 이곳은 오래전 화성인과 금성인이 이주한 후 우주에서 벌어졌던 화성과 금성의 대립이 고스란히 재현되는 무대다. 화성인은 진보를, 금성인은 보수를 대변하며 서로를 향해 소리친다. 나의 의뢰인들이 또 한 번 질문을 던졌다. "제로박사,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어떤 세계관을 가졌는가? 그들의 정치적 갈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망원경을 조정하며, 이 반도의 독특한 정치적 풍경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과연 이들의 갈등은 어디로 향할까?


🧭 한국 정치의 특수성: 보수에 치우친 토양

의뢰인들이여, 한국이라는 지역의 정치는 보수에 치우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화성인들은 이를 두고 "억압의 구조"라며 분노하지만, 금성인들은 "질서의 유지"라며 긍정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지구인들은 이를 "레드 컴플렉스"라 부른다.
한국은 불과 몇십 년 전까지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북한과 대립하며 "산업"까지 벌였던 역사를 가졌다. 젊은 세대에게는 이 기억이 흐려졌지만, 남성들은 군대에서 공산주의 체제를 적으로 삼아 총구를 겨누는 훈련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진보와 좌파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학습된다. 화성인은 이를 "세뇌"라 비판하지만, 금성인은 "안보의 필연적 결과"라 주장한다.
진보 의제가 뿌리내리기 어려운 토양은 또 다른 이유에서 비롯된다. 1987년 민주화운동과 촛불시위를 통해 군사정권과 부패한 정부를 몰아낸 경험이 있지만, 이는 진보적 의제를 위한 연대라기보다는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이었다. 화성인은 이 저항을 "정의의 승리"라 칭하지만, 진보 의제로 이어지지 않은 현실에 실망한다.


🧨 한국 보수의 전략: 멸공과 반공의 역사

한국 보수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그들은 "멸공"이라는 구호를 자주 사용한다.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자를 멸한다는 이 주장은, 한국의 특수성을 제외하면 극단적이다. 그러나 보수 정치인들은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공산주의는 악이다. 이를 배제하는 것이 보수의 근본 이념이자 국민의힘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라며 강하게 항변한다. 금성인은 이를 "질서의 방어"라며 지지하지만, 화성인은 "다양성의 억압"이라며 비판한다.
멸공 논란은 반공과 별개임에도, 보수가 진영을 공고히 하는 전략으로 활용해왔다. 나는 이 현상을 관찰하며, 한국 보수의 세계관이 얼마나 극단적일 수 있는지 깨닫는다.


🌋 586세대와 민주당: 진보인가, 기득권인가?

한국의 진보 정당, 민주당은 "586세대"라 불리는 이들에 의해 주도된다. 이들은 20년 전, 30대였던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다. 예를 들어, 이광재라는 인물은 37세에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역임했다. 이제 50대가 된 이들은 여전히 민주당의 중심에 있다.
화성인들은 이들이 진보적 의제를 추진한다고 기대했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들은 권위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지만, 진보 의제를 위한 정치였는지 의문이다. 민주당은 "끼리끼리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연령대가 변하지 않는 기득권 세력으로 보인다. 화성인은 이를 "진보의 배신"이라며 분노하지만, 금성인은 "질서의 안정"이라며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 2025년, 한국 보수와 진보의 현재 풍경

🔵 보수의 행로 – 균열의 미학 혹은 재구성의 서사

 

2025년의 한국 보수는, 마치 금이 간 도자기처럼 위태로워 보이지만, 그 금 사이로 새로운 빛이 스며든다. 윤석열 정권은 여전히 중심부를 지키고 있으나, 정권 초기에 약속했던 '공정'과 '상식'은 현실의 벽 앞에서 여러 번 굴절되었다. 국정 난맥과 권력 내부의 갈등은 보수라는 거대한 기체를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분해 중이다.

한편, 이준석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보수의 미래를 묻는 이들에게 반짝이는 별 하나로 남아 있다. 그는 정당 밖에서 존재감을 유지하며, 2030 세대의 감각을 이해하고 디지털 정치에 능통한 ‘업그레이드된 보수’의 표상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정당 내부의 기득권과의 충돌은 그를 외곽으로 밀어내고 있고, 이는 곧 보수가 스스로의 미래와 싸우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또한 새롭게 부상하는 신보수는, 시장의 자유보다 표현의 자유, 안보보다 정체성의 명료성을 강조하며, 고전적 보수의 문법을 다시 쓰고 있다. 이들은 과거가 아닌, ‘정체성과 선택’의 언어로 정치의 중심을 바꾸려는 존재들이다.

🪐 “보수는 무너지는가?”
아니라. 보수는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지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예전과는 전혀 다른 도면으로.

 

🔴 진보의 방향 – 이상과 현실 사이, 새로운 경계선 위에서

 

진보는 본래 별의 이름이었다. 가장 멀리서, 가장 먼저 빛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진보는 별이 아닌, 운동장 위의 플레이어로 남았다. 이재명이라는 인물은 그 어떤 정치인보다도 넓은 필드를 가로지르는 선수다. 그는 진보 진영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기업 친화적 언어를 구사하고, 중도적 실용 정책을 잇달아 내놓는다. 진보는 이제 ‘정의’를 외치는 위치가 아니라,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는 위치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 변화가 모두에게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일부 강경 진보층은 이를 '변질'로 본다. 그들은 여전히 기후 정의, 젠더 평등, 노동권 강화를 외치며, 가치의 순수성을 지키려 한다. 결국 진보는 이제 두 개의 시선, 두 개의 목소리로 나뉜다. 하나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전략을 짜는 진보, 다른 하나는 현실을 거부하며 가치의 깃발을 지키는 진보.

💫 “진보는 진화했는가?”
진보는 진화했다. 하지만 진화는 언제나 갈등을 동반한 과정이며, 그 갈등은 내부에서 가장 치열하다.

 

🌗 보수와 진보의 재정의 – 새벽을 앞둔 어둠처럼

지금의 한국 정치는 명확한 대립보다 복합적 조응의 양상을 띤다. 보수는 균열 속에서 신생을 꿈꾸고, 진보는 실용의 틀 안에서 이상을 꺼내려 애쓴다. 이는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던 ‘정치’라는 단어의 해체이며, 동시에 다시 짜여지는 사회적 상상력의 재구성이다.

  • 이념의 해체는 곧 정체성의 재건을 요구한다.
  • 정당의 이념보다 유권자의 정체성이 더 정교해졌다.
  • 그리고 이 모든 변화는, 우리의 질문을 바꾸고 있다.

🌠 “당신은 어느 진영에 속하는가?”에서,  ✨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로.


🌠 정치의 게임화: 가치가 아닌 욕의 무대

 

한국인들이 정치인을 만났을 때, 그들은 "진보"나 "보수"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에 대한 욕을 주고받는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삶을 망쳤다", "국민의힘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 같은 말들이다. 심지어 자기 정당 내 경쟁에 더 몰두한다. "상대방을 어떻게 밟고 일어날 것인가"가 그들의 주요 관심사다.
한국인들은 정치를 게임처럼 본다. 기자들도 이에 관심을 둔다. 가치나 대변의 문제를 고민하기보다는, 누가 이기고 지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화성인은 이를 "정치의 본질적 기능 상실"이라 비판하지만, 금성인은 "질서의 필연적 결과"라며 냉소한다. 나는 이 게임화된 정치를 관찰하며, 지구인들의 선택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 정치의 본질과 변화의 가능성

정치의 본질은 갈등을 해결하고 가치를 배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이를 회피한다. 젠더 이슈 같은 어려운 문제는 해결하기보다는 이용한다. 민주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같은 진보적 이슈에 소극적이다. 노동자의 안전만큼 산업자본주의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은 변화는 있다. 유권자가 스마트하게 정치인을 활용할 때 변화가 가능하다. 정치인은 표가 떨어지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유권자의 생각이 조직화되어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올 때, 그들은 변화를 시도한다. 화성인은 이를 "민중의 힘"이라 칭찬하지만, 금성인은 "질서의 불안정"이라며 우려한다.


🗳️ 마무리: 한국 정치의 미래는?

의뢰인들이여, 나는 한국의 진보와 보수 세계관을 기록했다. 레드 컴플렉스, 멸공의 역사, 586세대의 기득권, 그리고 새로운 보수와 진보의 스펙트럼… 이 반도의 정치는 복잡하다. 화성과 금성의 대립은 이곳에서도 계속된다. 나는 중심좌표 0.0에서 이 모든 것을 관찰하며, 이 갈등이 과연 어떤 미래를 만들어낼지 궁금할 뿐이다.


🟩 에필로그 : 녹색 별빛 아래에서

한국 반도는 작지만, 그 갈등은 거대하다. 진보와 보수, 화성과 금성의 대립은 끝없이 이어진다. 촛불과 멸공의 상징이 서로를 노려본다. 중앙에서 유권자들은 이를 바라보며 선택을 고민한다. 나는 팝콘을 들고 이 우주적 드라마를 관람한다. 의뢰인들이여, 당신들도 이 갈등의 무대를 즐기고 있는가? 아니면, 나처럼 팝콘을 들고 조용히 관찰할 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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